Y염색체가 질병의 열쇠가 된다면?
우리 몸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염색체는 총 23쌍, 즉 46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22쌍은 양쪽이 동일한 상염색체이고, 나머지 한 쌍이 바로 성별을 결정하는 성염색체다. 남성은 X와 Y, 여성은 X 두 개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 성염색체 중 Y염색체는 유독 작고 존재감이 미미해 보인다.
실제로 X염색체는 세포 내 DNA의 약 5%를 차지하는 반면, Y염색체는 고작 2%에 불과하다. 유전자 수로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X염색체는 900개에서 1,400개 사이의 유전자를 담고 있는 반면, Y염색체는 겨우 70개에서 200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왜소한 Y염색체는 때때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생물학적 필수요소인가, 사라져가는 흔적 기관인가’라는 논쟁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작음 속에도 매우 중요한 기능이 존재한다. 바로 SRY(sex-determining region Y)라는 유전자로, 이 유전자가 개체의 성별을 남성으로 결정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가 존재하면 배아는 고환이 형성되고 남성으로 발달하게 되며, 심지어 성염색체 이상이 있는 경우에도 이 유전자 하나만으로 남성의 외형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XXY 염색체 조합을 가진 클라인펠터 증후군 환자도 남성 외형을 지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Y염색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라지는 특이한 성질을 지닌다. 이 현상은 개인의 세포 단위에서부터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적 맥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특히 70세 이상 남성의 약 15%는 체내 일부 세포에서 Y염색체가 완전히 소실된 상태라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여기에 흡연, 스트레스, 만성 염증과 같은 외부 요인들도 Y염색체 소실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화적으로 보자면, X와 Y염색체는 약 3억 년 전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후 Y염색체는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유전자를 잃어왔고, 약 1,000개 이상의 유전자가 사라졌다는 분석도 있다. 유전자 손실 속도는 백만 년당 약 4.6개로 추산되며, 이대로라면 향후 수백만 년 내에 Y염색체는 기능을 거의 상실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작고 소실되기 쉬운 Y염색체가 오히려 건강, 특히 남성의 암과 심혈관 질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연구들이 최근 들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MD 앤더슨 암센터 연구진은 Y염색체의 특정 유전자가 대장암의 전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쥐 실험을 통해 Y염색체가 있는 수컷이 암 전이 속도가 더 빠르고 생존율이 낮았음을 관찰했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가 암세포 사이의 연결을 약화시켜 종양 세포가 쉽게 퍼지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심혈관 질환과의 연관성도 흥미롭다. 미국 버지니아 의과대학과 스웨덴 웁살라대 공동 연구진은 Y염색체의 소실이 심부전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실험에서 유전자 편집 도구인 크리스퍼를 사용해 생쥐 골수세포의 Y염색체를 제거한 후 이를 생쥐에 이식하자, 심장에 반흔이 생기고 심부전 증상이 발생했다. Y염색체가 존재하는 정상 골수를 이식받은 쥐는 생존율이 60%였던 반면, 제거된 골수를 이식받은 쥐는 생존율이 40%로 급감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Y염색체가 면역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 시더스-시나이 암센터는 방광암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Y염색체가 소실된 환자일수록 암이 더 빠르게 자라며 치료 반응도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면역 세포인 T세포가 Y염색체가 결핍된 환경에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T세포 고갈’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종양의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Y염색체는 단순히 남성을 규정짓는 성염색체로서의 의미를 넘어, 암 전이, 심장 질환, 면역 반응 등 여러 생물학적 경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동안 과소평가되던 Y염색체의 기능이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과 정밀 분석 기술의 발달 덕분에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Y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남성과 여성 간 질병 취약성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 단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남성이 유독 암이나 심혈관질환 등에 더 취약한 이유 역시 Y염색체의 기능 저하 혹은 소실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연구는 성별에 따라 맞춤화된 정밀 의료를 가능하게 하며, 새로운 예방 전략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작고, 잃어버리기 쉬운 Y염색체. 그러나 그 속엔 남성의 건강과 생존을 좌우할 중요한 단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 미지의 염색체가 열어줄 의학적 가능성에 과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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