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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몸의 건강와 다양한 정보

내시경 검사시 사용하는 프로포폴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by powerin0815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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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 약 들어갑니다, 하나부터 세어볼게요"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찾은 날, 수면내시경을 선택했다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약 들어갑니다, 하나부터 세어보세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잠들지 않고 버텨보겠다는 근거 없는 의지가 생기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 둘…’ 정도까지 세다가 금세 의식을 잃고, 눈을 떠보면 어느새 모든 검사가 끝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짧은 찰나에 사람을 순식간에 잠재우는 마법 같은 주사의 정체는 바로 ‘프로포폴’이다. 이 약물은 단지 잠을 자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식 자체를 순간적으로 ‘끄는’ 강력한 전신마취제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수면내시경, 각종 시술 및 통증 조절 등 다양한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병원 내시경 검사시 시행하는 정맥주사 사진

프로포폴이 잠재우는 방식, 그리고 그 이상한 ‘헛소리’

프로포폴은 지용성 물질로서 기름 성분에 잘 녹는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세포막을 쉽게 통과하고, 몸속에 빠르게 흡수된다. 투여한 지 불과 1분도 안 되어 환자는 의식을 잃게 되고, 평균적으로 약 5분간 그 효과가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다. 성인의 경우 보통 체중 1kg당 1.5~2.5mg 정도의 용량을 투여하면 충분하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성질을 지닌 프로포폴은 대두유에 섞어서 사용되는데, 이로 인해 액체는 불투명한 흰색을 띠게 된다. 이 모습이 마치 우유처럼 보인다 하여 ‘우유 주사’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깊은 수면 상태와는 다르다. 이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의식하 진정(sedation under consciousness)’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최소한의 의식은 남아 있어서 환자는 자발적인 호흡이 가능하고, 물리적 자극에도 반응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의사의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거나 간혹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연예인이 수면내시경 후 이상한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장면이 종종 웃음 요소로 등장하곤 하는데, 이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검사 중 느껴지는 불쾌감이나 통증은 최소화되며, 회복 과정에서의 기억도 거의 사라진다.

 

프로포폴이 뇌에서 작용하는 방식

프로포폴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 수용체에 작용해 뉴런의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뇌의 과도한 흥분 상태를 낮추고 진정을 유도한다. 가바는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는데, 프로포폴은 이러한 가바 수용체의 민감도를 높여 뉴런 사이의 신호 전달을 억제한다. 그 결과, 뇌는 차분한 상태로 진입하며 의식은 점점 흐려진다.

하지만 프로포폴이 정확히 어떻게 무의식을 유도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얼 K. 밀러 교수 연구팀은 중요한 실험을 통해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MIT 연구팀의 새로운 접근: 뇌의 ‘동적 안정성’에 주목하다

밀러 교수 연구팀은 세계적인 과학 저널 ‘뉴런(Neuron)’을 통해 프로포폴이 뇌의 ‘동적 안정성(Dynamic Stability)’을 방해함으로써 무의식을 유발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동적 안정성이란, 외부 자극에 의해 흥분된 뇌가 다시 본래의 균형 상태로 빠르게 돌아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지나치게 과열된 반응을 스스로 조절해 통제력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이다.

기존 연구들은 프로포폴이 뇌를 진정시키는 방식으로 무의식을 유도한다고 보았다. 반면 일부 학자들은 뇌가 오히려 과도하게 흥분하여 혼란 상태에 빠짐으로써 의식을 잃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반된 결과는 동적 안정성을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점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DeLASE(안정성 추정을 위한 지연 선형 분석)’라는 새로운 분석 기술을 고안해냈다. 이 기술은 전기신호를 기반으로 뉴런의 반응 패턴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연구팀은 원숭이에게 프로포폴을 투여한 후 1시간 동안 시각, 청각, 공간 인식, 실행 기능 등 뇌 피질의 네 영역에서 뉴런의 활동을 관찰했다. 정상적인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외부 자극에 반응한 뉴런의 활동이 급격히 증가한 뒤, 빠르게 안정된 상태로 돌아갔다. 그러나 프로포폴이 투여되자 뉴런은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를 유지했고, 뇌가 원래 상태로 회복되는 데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피험 동물이 점점 의식을 잃어갈수록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실험은 프로포폴이 단순히 뉴런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뇌 전체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의식을 끄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MRI뇌사진뇌그림이 그려진 마네킹

 

신경망 시뮬레이션으로 확인된 메커니즘

연구진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인공 신경망 모델을 활용한 시뮬레이션도 진행했다. 신경망에서 특정 지점의 활동을 억제하면 전체 네트워크의 안정성이 오히려 무너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는 마치 하나의 뉴런 억제가 다른 억제 뉴런을 간접적으로 억제해 전체 활동이 되려 증가하게 되는 현상과 유사하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프로포폴이 뇌의 흥분을 억제하려다가, 오히려 억제 시스템 자체를 방해하면서 전체적인 불안정성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밀러 교수는 “뉴런들은 서로 적절한 정도로 자극을 주고받아야 정상적인 사고 활동을 할 수 있다”며, “프로포폴은 이러한 균형 잡힌 흥분 상태를 유지하는 뇌의 메커니즘 자체를 무너뜨리는 약물”이라고 덧붙였다.

 

더 안전한 마취제를 향한 한 걸음

이번 연구는 프로포폴의 작동 원리에 대한 기존의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 뇌가 의식을 잃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 연구팀은 이와 같은 메커니즘을 더 정교하게 밝혀냄으로써, 앞으로는 더 안전하고 정밀한 마취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마취는 단순히 환자를 잠재우는 것이 아닌, 뇌의 정교한 균형을 조절하는 고도의 과학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우리는 마취의 이면에 숨겨진 복잡한 뇌과학적 메커니즘을 조금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환자의 안전을 위한 중요한 진보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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